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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규 장편소설 <트렁커> ㅣ 상처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고은규 장편소설 <트렁커> ㅣ 상처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독서라는 건 돈 1만 원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착한 취미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으려 노력은 하는데 실천하기란 쉽지가 않네요. 연초에 책 100권 읽기를 목표로 세우기도 하지만 늘 실패하기 일쑤에요. 오늘은 오래전에 읽었던 책에 대한 리뷰를 해볼까 합니다.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을 수상한 고은규의 소설 <트렁커>인데요. 이색적인 소재로 두 주인공의 아픔을 풀어내는 방법이 굉장히 인상 깊었던 책이랍니다. 좋은 책은 함께 봐야 제맛이죠! 책 리뷰 지금 시작합니다.

■ 트렁커라니요? 그게 뭔가요?
트렁커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신가요? 저는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진 트렁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트렁커란 멀쩡한 집을 놔두고 트렁크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요. 계속해서 트렁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원인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트렁커들의 심리를 고은규 소설가는 어떻게 풀어내는지, 함께 책을 펼쳐 봅시다!
■ 상처와 상처가 만났다.
트렁커의 두 주인공 름씨와 온두. 상처로 얼룩진 과거 앞에 의외로 담담한 름씨에 반해 온두는 상처와 과거가 뒤틀려버려 마음을 꼭 닫고 상처와 대면하기 두려워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어요. 두 주인공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트렁커랍니다. 남자답고 강인한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못해 폭력으로 험난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릴 적 름씨와, 엄마 아빠의 자살로 혼자가 되어 들피집에서 구역질 나는 생활을 하며 상처가 물감 번지듯 마음 구석까지 번진 상태의 어린 온두는 당시 둘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던 트렁크에서 처음 만납니다. 트렁크는 누군가에게는 지저분하고, 무거운 짐을 싣는 공간 아닌 공간일 뿐이지만 름씨와 온두에게는 안식처이며 아지트였고, 상처로부터 달아나 평화가 찾아오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재회, 여전히 남아있는 상처
첫 만남은 서로의 기억에서 잊히고 상처를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 름씨와 온두는 다시 만납니다. 우연한 계기로 둘은 카드 뒤집기 게임을 같이 하게 되는데, 이 게임은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죠. 게임에서 지는 쪽이 과거를 하나씩 꺼내놓은 시간. 름씨는 자신이 여자보다 피아노를 잘 쳐 아버지께 얻어맞았던 일, 손가락을 잘렸던 일, 유일하게 자기편이었던 큰형이 자살했던 일의 과거를 하나하나 조심스레 꺼내 놓습니다. 하지만 온두는 그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엉킬 대로 엉키고 뒤틀려버려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과거인지 가상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있는 온두는 털어놓기는커녕 기억을 억지로 지우려고 애쓸 뿐이었던 거죠.
■ 상처는 다른 상처로 치유된다.
름씨가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고스란히 꺼내놓는 걸 지켜본 온두는 결국 자신의 상처와 아픔, 그리고 엉켜버린 기억들을 한올 한올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온두는 다른 상처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죠. 나 혼자만 힘들었던 게 아니니까. 나만큼 힘들었던 름씨의 상처가 온두에겐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넓은 집을 놔두고 좁은 트렁크 속에서 잠을 자야 했던 름씨와 온두. 그들은 왜 그랬을까요? 잠을 잘 때만큼은 상처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였을까요? 좁은 공간 속에 꼭꼭 숨어버리면 상처에서도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요? 작가는 이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과 결과를 트렁크를 떠나 집에서 잠을 자는 둘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 짓습니다. 독특한 소재로 평범한 결과를 만들었지만, 어느새 둘의 감정에 이입되어 이들이 행복하게 집에서 자는 모습은 제가 그토록 원하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 집이 아니라도 좋으니 편히 자요 트렁커여!
자신의 상처에 담담하게 맞설 수 없거나, 시간이 흘러 이것이 과거인지 현실인지, 진짜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어둡고 갑갑한 트렁크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안락함을 느끼며 온전히 위로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들이 굉장히 궁금해졌어요. 자고 일어나서 트렁크 문을 열고 나와 햇빛과 바람의 무차별한 공격을 받을 때 그들은 '오늘도 트렁크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용기를 얻게 되진 않을까요? 어쩌면 그것이 또 하루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되는 건 아닐까요? 집이 아니라도 좋으니 트렁커들이여! 편히 자요!
글 2013.04.16 에디터 Alice/ 옮긴이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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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데이트 : 2013.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