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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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는 너무도 엄격한 편견들

타인에게는 너무도 엄격한 편견들

 

 

 

내가 맥주 한잔 마시면서 가족들 앞에서 '편견'에 대한 나의 생각을 피력했다. 열심히 들어주는 나의 관중들(나의 가족들)이 있어서 신나게 얘기했는데, 딸과 아내가 주의 깊에 듣고 동감해줘서 이것을 글로 옯겨보았다. 나의 개똥철학이다.

 

 

 

초록색 상자에서 나온 담쟁이 줄기가 하트 모양을 만든 그림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질문을 종종 접한다. ‘교회에 다니면서 술을 마셔요?!’ ‘기부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왜 명품을 즐겨 입나요?!’ 이런 질문에는 진정한 의문보다는 비아냥이 숨겨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교회와 자선이 ‘그’로 대체되면서, 그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져서 그럴 수도 있다. 교회에 다니는 자, 자선을 행하는 자가 겸손하고 금욕생활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아무래도 올바른 것 같지 않다. 우리의 도덕적인 기대에 부응한다면 칭찬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그 목적이 어떠하던지 간에, 즉 그것이 깊은 신앙으로 인한 것이든, 새로운 인간관계를 위한 것이든지 간에, 보다 잘 살기 위한 새로운 노력의 일환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니 그의 삶이 그다지 도덕적이지도, 존경받을 만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자기 삶에 대한 애착으로 시작된 것에 너무 높은 도덕적 기준의 잣대를 대는 것은 무리가 있지 싶다.

 

 

자선을 베푸는 자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다. 자선을 베풀고 기부를 생활화한 사람이 모두 근검절약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편견이다. 나눔이 안 먹고 안 쓰면서 나누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충분한 것을 덜어주는 것도 진정한 나눔에 해당되며, 명품을 입고 다니면서 자선을 행한다고 해서 그것을 위선이라고 나무랄 수 없다.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경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난민촌을 향하지 않나?

 

 

어쩌면 타인에게 높은 기준을 대는 것은, 내가 그 영역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위로’일 수도 있다. 누군가 내가 하지 못하는 어떤 어려운 행동을 할 때, 그의 진정성을 이해하기보다, 그를 내 쪽으로 쉽게 폄하시키기 위해 그런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일 수도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자선을 행하는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네. 나와 다르지 않네.’

 

 

나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타인에 대해 보다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싶다. 자긍심이 높은 사람은 타인을 함부로 폄하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칭찬이 참으로 인색해지고, 칭찬보다 비난이 일색 하는 요즘, 술자리에서 두서없이 떠들어댄 나의 이야기를 잠시 시간을 내어 정리해 보았다.  

 

 

 

 

글 2010.03.06   Dr.Kim / 옮긴이 Joy

   Editor_김경호

* 업데이트 : 2013.11.16